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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의 도순검사 '강조의 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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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시작하자 2023. 11. 22.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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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을 보시면, 고려시대 목종이 믿고 있던 도순검사인 강조가 정변을 일으켰는데요, 오늘 이 시간에는 도순검사가 벌인 강조의 정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강조의 정변

1009년 고려 목종 12년(기유년)에 서북면 도순검사인 강조가 군사력을 동원해서, 목종을 폐위시키고, 현종을 옹립하여 정권을 장악한 사건이다. 사실, 도순검사인 강조는 목종이 죽은 줄 알고, 김치양을 살해하려고 가는 도중, 사실 목종이 살아있으며, 아직 김치양이 목종을 살해하기 전인 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도순검사 강조는 갈등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목종, 즉 황제가 살아있는데, 황제의 명령 없이 군사를 움직이는 것은 반역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개경으로 향하는 도순검사 강조

 

하지만, 고민 끝에, 도순검사 강조는 진군을 하게 되며, 반역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고, 현재 고려는 황제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나라가 혼란에 빠졌으니, 이 기회에 황제를 끌어내리고 새로운 황제인 현종을 왕위에 세우려고 합니다. 반란에 성공한 도순검사 강조는 현종을 왕위에 세우나, 현종은 왕실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보니, 도순검사인 강조가 왕위를 장악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도순검사 강조는 목종을 살해하고, 천추태후는 황주로 유배시키고, 친족들은 섬으로 유배를 보냈으며, 김치양과 그의 6살 아들은 처형하며, 천추태우와 김치양 세력들을 완전히 몰아내었습니다. 이와 같이 반역자가 되어, 목종을 살해하고 현종을 옹립한 일은 추후 고려와 거란과의 전쟁에서 거란이 표면적으로 내세운 침공 명분이 됩니다.

 

현종이 도순검사 강조에 왕실의 결정은 본인이 한다고 하니, 도순검사 강조는 전쟁은 군사가 하고, 왕실의 일은 신하들이 하는것이라고 충고하였습니다. 황제로서 그가 맡은 책무를 다하고 싶은 현종이나, 능력도 없으면서 어떻게 왕실을 이끌어가겠느냐고 오히려 공격하는 도순검사 강조에 의해, 현종은 바로 꼬리를 내리고, 연회를 즐기던지 사냥을 나가든지 다른 일을 하라고 강조하는 도순검사 강조. 또한, 한번 황제를 시해한 자신이 두 번 못하겠냐고 협박하는 강조의 모습을 보입니다.

 

강조의 정변 이후,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의 황제인 성정은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하였으며, 이에 강조는 30만 군사로 거란에 맞서 싸웠으나, 패배하고 사로잡히게 됩니다. 거란의 황제인 성종이 강조의 인품을 보고 반하여, 자신의 신하가 되어 권력을 누리자는 제안에, 그 제안을 거절하자 바로 처형당하고 맙니다. 현종 역시 고려군의 대패로 수도 개경을 버리고, 남쪽의 나주까지 몽진을 떠나야했고, 피난 와중에도 반란군이나 다름없었던 지방 호족들에게 온갖 수모를 겪게 됩니다.

 

추후, 현종은 전란을 수습하고, 고려의 전성기를 열어, 성군으로 인정받고 있는데, 현종은 강조의 정변을 못마땅해하였기 때문에, 현종 2년 8월에 강조의 일당들을 유배 보내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현종이 즉위와 동시에 고려의 전성기가 열렸지만, 신하가 왕을 시해한 사건으로 거란이 고려를 침략하게 하는 명분을 만들었기 때문에, 도순검사 강조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후, 강감찬은 고려거란과의 전쟁당시, 귀주대첩이 벌어졌으며, 12,000명의 군사로, 20만 명의 거란족을 패배로 이끈 강강찬은 이 전쟁 이후, 영웅이 되었으며, 그 후 한동안 고려는 평안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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