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 4일 만에 관객 100만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 450만 명을 향한 목표로 성큼 다가서고 있습니다.^^ 2023년 최고의 영화인 밀수가 496만 명을 모았는데, 영화 '서울의 봄'이 2023년 말에 밀수를 추월하고 최고의 영화로 다가설지도 관건이네요.
영화 서울의 봄은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최초의 대통령 살인 사건인 10.26 박정희 대통령 살해 이후, 일어난 1979년 10월 26일부터 1980년 5월 17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일에 대한 영화이며, 서울의 봄은 전두환의 신군부가 투입한 계엄군에 의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229명의 사망자와 실종자 등 약 3천여 명의 부상자를 남긴 채 무력 진압되면서 종결된 사건을 영화화한 이야기입니다.
1979년 10월 26일 16년간 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을 집권한 박정희가 김재규에서 피살당하면서,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크게 터져나오자, 대통령 권한대행 최규하는 1979년 11월 10일 특별담화를 통해, 유신헌법에 따라, 대통령을 선출하되, 새 대통령은 민주헌법으로 개정한 후, 이에 따라 다시 선거를 실시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담화문은 야당 정치인을 포함하여 모든 국민들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키며, 군권을 장악하였으며, 이에 당시 방학이 시작된 직후였다보니, 개학할 때까지 대학가의 시위는 일어나지 않았으며, 1980년 3월이 되어서야 시위가 본격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이후, 4월 24일 서울 14개 대학 361명의 교수들은 학원 민주화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으며, 신군부는 정권을 장악한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교수들과 함께 해직되었으며, 그 수는 87만 명에 달했습니다. 서울대에서는 개교 이래 최대인원인 1만 명 이상의 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비상학생총회가 열렸습니다.
대한민국의 제 11대, 12대 대통령이자 독재자였던 전두환역은 영화 서울의 봄에서 황정민이 전두광역을 소화하였습니다. 전두환은 1951년 육군사관학교에 11기로 입교하였으며, 1955년 육사 졸업과 함께 군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집권 이후, 노태우 등 육사 동기들과 함께 육군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결성하여,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호를 받으면서 군에서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이후, 10.26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되자 보안사령관으로,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게 되며, 수사본부장이라는 직책과 자신이 맡고 있던 하나회를 통해 12.12 군사반란으로 군을 장악했으며, 다음 해 1980년 5.17 내란 쿠데타를 일으켜 헌정을 중단하고, 5.18 민주화운동을 진압하고, 국정의 실권을 장악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제 11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에 올랐으며, 7년 단임 대통령제를 골자로 하는 새 헌법을 통과시킨 후, 제12대 대통령에 당선되며, 제5 공화국을 출범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김영삼대통령 때, 1995년 노태우와 함께 구속 기소되었으며,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1979년 12월 12일 대한민국 육군 내 불법 사조직인 하나회의 일원인 전두환이 주도하여 일으킨 군사 쿠데타로 제5 공화국의 실질적인 사태가 시작되었으며, 10.26 박정희 피살 이후, 전두환은 사건 수사를 빙자하여 중앙정보부, 검찰총장, 치안본부장등을 보안사로 불러 책임을 물었으며, 자신에게 협조하지 않으면 체포하겠다며, 압박을 하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검창, 경찰, 헌병까지 장악하게 되었으며, 이에 장태완 수도경비 사령관이 이끄는 세력들과 격돌하였으며, 이미 대부분의 실권을 장악한 전두환에 의해, 장태완은 붙잡히게 됩니다.
이후, 군권을 장악한 반란군은 이른바 신군부를 구축한 후, 5.17 쿠테타를 거쳐, 1년도 안되어 리더인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추대함으로써, 정권을 탈취하는데, 성공하였으며, 이 후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어, 전두환 정권 7년, 노태우 정권 5년, 도합 12년 동안 대한민국의 지배 세력으로 군림하여 많은 말들을 쏟아내게 되었습니다.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