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제11대, 12대 대통령인 전두환은 기존 박정희 대통령의 오른팔이었으며, 박정희(제5대~9대 대통령)가 살해당한 이후, 국무총리로서 대통령에 잠시 오른 최규하 대통령을 압박하여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한 뒤, 또다시 자신의 오른팔인 노태우에게 대통령직을 인계한 장본인입니다.
이번 전두환 손자인 전우원 씨의 폭로로, 다시금 재주목 받게 된 전두환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베트남전에 연대장으로 참여한 뒤, 1961년 5.16 군사정변 당시 육사생도들의 쿠데타를 지지하여 시위를 주도하였습니다.
그 후, 베트남 전쟁에 파병되었다가 귀국 한 뒤, 1976년 차지절의 추천을 받고 대통령 경호실 작전차장으로 발탁되며, 실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그 후, 박정희 저격 사건을 수사한 뒤, 1980년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를 한 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압을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 8년 뒤인 대통령 퇴임 이후, 1995년에 내란죄 및 반란죄로 1심에서는 사형을 받았으나,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을 받았으며, 뇌물수수죄로 추징금 2200억을 선고받았으나, 1997년 김영삼 대통령시절 특별 사면조치를 받았으며, 추징금은 약 절반정도만 회수되었습니다.
전두환은 중학교 시절 권투를 시작했으며, 축구를 좋아하던 소년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에는 싸움 실력이 뛰어나 대구 지역에서 알아주는 싸움꾼이었으며, 육군사관학교 때에는 축구를 자주 하여, 실제로 1983년 K리그 개막 경기에 직접 참관을 하였으며, 당시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박종환 감독에게 축구국가대표팀의 작전과 선수기용을 직접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육군사관학교 동기인 노태우와 매우 친했으며, 육사 시절 육군 대령이었던 이규동의 차녀인 이순자를 만나 결혼하였습니다.
1980년 5월 대학생들이 서울역 광장에 10만 명~20만 명이 모여 데모 운동을 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들의 데모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5.18 전두환은 비상계엄령을 전국에 확대하였으며, 김대중, 김종필을 영장 없이 체포하였으며, 김영삼 등 다른 야당 인사들의 기능도 일시 정지시켰습니다. 이에, 전남대학생들은 김대중 체포에 항거하는 시위를 하였으며, 시위가 거세지자, 계엄군과 공수특전여단을 투입하여 진압했으며, 5.19 시위대가 3만 명으로 불어나자, 계엄군은 총과 장갑차를 앞세워 시위대를 진압하게 됩니다. 이에 수십 명의 학생들이 사망하게 되었으며, 학생들은 경찰서에서 탈취한 소총으로 무장을 시작하게 됩니다.
1979.10.26 박정희 사망 이후, 전두환은 노태우와 힘을 합하여, 12.12 군사 반란을 일으켜, 최규하 대통령의 승인 없이, 계엄령을 일으켰으며, 전두환은 5.18 이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통해 전권을 장악하고 최규하 대통령을 위협하여 하야토록 했으며, 본인을 육군 대장으로 진급시키며, 본인은 대통령으로 임명되었습니다. 당시 김수환 추기경은 ' 이 정권에 하느님이 두렵지 않으냐. 이 정권의 뿌리에 양심과 도덕이라는 게 있습니까? 총칼의 힘밖에 없는 것 같다'라고 비판하였지만, 전두환은 말없이 미소로 화답하기도 했습니다.
1995년 전두환은 대통령 퇴임 후, 8년 뒤 12.12사태와 5.18 민주화 운동 및 비자금에 대한 재판을 갖게 되었으며, 1996년 12월 전두환에게 최종 무기징역과 2205억 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으며, 죄명은 반란수괴, 반란모의참여, 불법진퇴, 상관살해, 초병살해, 내란수괴, 내란목적살인,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의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판결하였습니다. 하지만, 1997년 12월 대통령 특별사면에 의해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추징금 중 532억만 납부한 뒤, 자신의 통장에는 29만 원 밖에 없다고 주장하였으며, 1673억 원은 환수되지 않고 있으며, 전두환 일가가 약 1700만 달러(약 220억 원) 이상의 비자금을 조성하여,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와인 생산 농장(와이너리)을 운영하고 있으며, 전두환 일가들이 무주리조트 등에서 골프를 치는 등 호화로운 모습이 포착되기도 하였습니다.
전두환 재임시절 형인 전기환이 노량진 수산시장을 인수하고, 동생 전경환이 새마을운동 중앙본부 회장을 지내며 비리를 저질러 퇴임하는 등의 물의를 일으켰으며, 첫째 아들 전재국은 출판업체 시공사의 대표이며, 둘째 전재용은 탤런트 박상아 씨와 결혼했으며, 셋째인 전재만은 한국제분 사장이자 운산그룹 회장 이희상의 장녀와 결혼했습니다. 또한, 장녀인 전효선 씨는 서경대학교 교양영어 조교수로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전두환이 남기고 간 비자금은 이순자 여사가 모든 것을 관리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추징금은 총 2205억이었으며, 그중 1248억 원인 약 57%만 집행한 상태이며, 검찰은 전두환 사망에도 불구하고, 은닉재산을 찾는 등 끝까지 환수할 수 방법이 없는지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검찰은 지금까지 채권, 연희동 사저, 한남동 부동산 및 이태원동 빌라 등 총 1248억 원에 대한 재산을 압류했으며, 미집행액은 약 956억 원이나, 전두환 측은 연희동 자택만은 못 내놓겠다고 주장하였으며, 현재 법원에서 서울 연희동 본채와 정원에 대한 압류는 결국 최소결정이 났으며, 별채에 대한 추징 가능성이 커진 상태였으나, 전두환 대통령 사망 이후에도 추징할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의 손자인 전우원 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연희동 자택에 숨겨진 금고가 있다며, 연희동 자택을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영화 기생충속 대저택의 지하실이 생각나게 되는데, 전두환 연희동 자택안에도 영화 기생충처럼, 비밀스런 공간에 비밀 금고가 있을 것이라 생각되며, 전우원씨 어머니의 증언에 따르면, 숨겨진 금고에는 엄청난 양의 채권들이 숨겨져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전두환 가족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연희동 자택을 지키려고 하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또한, 전우원 씨에 따르면, 본인의 학자금을 가족들이 지원해줄때에, 항상 연희동 자택에 일하고 계신 아주머니나 경호원의 계좌를 통해 돈을 보내주셨으며, 전우원씨 어머니의 위자료 또한, 아주머니나 경호원들의 계좌를 통해 입금받으셨는데, 이에 대해 검은돈의 출처가 의심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웨어벨리'라는 회사와 '비엘에셋'이라는 부동산 회사도 전우원 씨와 현인 전우성 씨에게 처음에 양도되었으며, 또다시 최종적으로는 박상아 씨에게 양도한다는 서류에 사인도 했다며, 이에 대한 명백한 조사가 필요하다고도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전두환 가족들은 주변 지인들과 가족들을 이용하여 비자금을 세탁하여 왔으며, 주변인들을 철저히 조사하면 모든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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