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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우스 '안정환' 부모없이 할머니손에 자란 어린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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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시작하자 2023. 2. 5.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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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카타르 월드컵 해설위원으로서, 가장 높은 시청률을 선보이며 국민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안정환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2골을 넣었고, 2006년 월드컵에서도 1골을 넣으며, 잘생긴 외모와 화려한 축구 기술로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테크니션으로서 인정받았던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안정환은 어린 시절, 너무나 가난해서 하루하루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도대체 안정환은 어떤 삶을 살아왔었던 것일까요? 테리우스 안정환이 부모없이 할머니손에 자란 어린시절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합니다.

▣ 안정환 프로필

  • 출생 : 1976년 1월 27일생, 경기도 파주
  • 신체 : 178cm, 80kg
  • 학력 : 서울 대림초, 남서울중학교, 서울공업고등학교, 아주대
  • 축구경력 : 부산 대우 로얄즈, AC 페루자, 시미즈 S펄스, 요코하마, FC 메스, MSV 뒤스부르크, 수원 삼성, 부산 아이파크, 다련 스더
  • 국가대표 : 71경기 17골
  • 소속 : 리혜원 라이프스타일컴퍼니 대표
  • 직업 : 방송인, 해설위원

우리가 알고 있는 안정환은 화려한 외모 덕에, 순탄하게 살아왔을 것이라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어린 시절뿐만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도 순탄치 못한 행보를 걸어왔습니다. 대학 졸업 후, K-리그 부산대우 로얄즈라는 프로구단에 입단한 후, 이탈리아 리그, 일본 리그, 프랑스 리그, 중국 리그 등에서 선수 생활을 하였으며, 은퇴 후 수많은 방송활동을 통해 국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방송인으로 활동 중이며, 국가대표 경기가 있을 경우에는 해설위원으로서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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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정환 어린 시절

안정환은 조각 같은 외모로 테리우스, 판타지 스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나, 그는 매우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내왔습니다. 아버지는 일찍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얼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하며, 안정환이 6살 때 외할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인해 돌아가신 후, 외할머니에게 맡겨진 후, 외할머니와 단 둘이 판자촌에서 살아왔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친정어머니와 안정환을 버리고 따로 생활을 하였다고 하며, 안정환은 초등학교 때 10번 넘게 이사를 하였으며, 초등학교 때 축구부에 들어오면 빵과 우유를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축구부에 들어갔으며, 시합이 끝나면 짜장면을 사준다고 하여 축구시합에 뛰기 위해 축구에 매진했다고 합니다.

안정환은 초등학생 시절, 축구 연습이 끝나면 가족이 있는 집으로 향하는 친구들과는 다르게, 한강둔치로 가서, 무당들이 굿을 하고 남은 음식으로 배를 채워야 했으며, 배추밭에서 배추 밑동을 뽑아 먹기도 하였습니다. 안정환은 학교 근처에 있는 이모집에 얹혀살던 때가 있었는데, 안정환이 이모집에 들어온 이후, 매일 이모부와 이모의 부부싸움이 밤늦게까지 이어져, 이모집에 못 들어가고, 밖에 나와 떨고 있을 때에는 지나가던 대학생 누나들이 건네준 과자와 사과로 끼니를 해결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어릴 적부터 힘든 생활로 인해, 안정환은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까지 2시간씩 걸리던 차비도 아끼고, 이모집에서 눈치를 보기 싫어, 학교 창고에 몰래 들어가 잠을 자던 어린이였습니다.   

▣ 학창 시절의 안정환

중, 고등학생 때에는 부모도 없고, 돈도 없다며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는 대상일 수밖에 없었고, 선배들은 숙소에 먹을 것이 없어지면 매번 안정환을 의심하여 선배들로부터 구타 대상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정말 안정환의 학창생활은 설움의 연속이었고, 축구부와 같은 운동부들은 항상 주위 같은 운동부로부터 싸움에 엮기게 되다 보니, 하기 싫은 싸움을 자주 하게 되었으며, 실제로 조직 폭력배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주말에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공사판에 막노동 같은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당시 목동역 건설 현장에서는 안정환이 막노동으로 투입되어 벽돌 쌓는 일을 했다고 하네요. 안정환도 방송에서 목동을 지나갈 때마다 어린 시절 벽돌을 쌓던 본인의 추억을 상기시킨다고 하였죠.

또한, 화려하고 날카로운 콧날을 갖춘 잘생긴 외모 덕분에, 서울 신길동에 있는 나이트클럽에서 웨이터 생활도 하였으며, 그 당시 팁도 많이 받았으며, 과일 안주를 깎는 연습을 많이 하여, 지금도 과일을 엄청 잘 깎는다고 합니다. 안정환은 고등학생 시절, 프로에 돈을 받고 입단하는 선배들을 보고, 프로 축구선수가 되기로 작정했으며, 고등학교 때 제대로 축구 기술을 연마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대학 입학 당시, 안정환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명문대학으로부터 오퍼를 많이 받았지만, 안정환은 친구들을 생각한 나머지, 명문대학을 뿌리치고, 친구들과 함께 변방의 아주대학교를 선택하게 됩니다.

가족이 없었던 안정환에게 친구들은 그가 유일하게 의지했던 사람이었고, 본인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을 챙기는 따뜻한 사람임을 알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이름도 없었던 아주대학교 축구부에 입학하여, 화려한 축구 기술로 아주대를 우승시키기도 하였으며, 유니버시아드 축구대회에서도 안정환의 이름을 각인시키기도 했습니다.

안정환 유튜브 채널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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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정환 프로생활

안정환은 프로에 입단하면서 받은 계약금으로 할머니에게 아파트를 선물해 주고, 어머니의 도박 빚을 대신 갚아주느라고 돈을 모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안정환의 프로 생활은 그야말로 그의 전성시대였습니다.

K-리그 최초로 한 시즌 40만 관중 시대를 열기 시작했으며, 안정환이 뛰던 1999년에는 홈 관중 48만 명을 기록하였으며, 경기장을 연일 매진시키며 엄청난 팬을 확보하였습니다. 특히, 1999년 프로 2년 차에는 21 득점, 7 도움으로 최전성기를 맞게 되었으며, K-리그 사상 최초로 준우승팀에서 MVP를 타게 되는 엄청난 존재감을 뽐냈습니다.

이런 인기로 인해, 안정환은 그 당시 톱스타였던 현빈, 김재원과 CF를 찍으며 영화배우보다 더 잘생긴 축구선수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켰으며, 그 당시 한국은 안정환 열풍이 불었던 시대였습니다. 안정환은 프로 2년을 마친 후, 스페인의 '라싱 데 산탄데르'와 계약을 맺기로 하였으나, 사인하기 불과 3~4일 전 갑자기 이탈리아 페루자에서 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대한민국 선수 제1호로 이탈리아 세리에 A리그 선수가 됩니다.

▣ 안정환의 세리에 A 입단

하지만, 이 계약은 임대 계약이었기 때문에, 안정환의 소속은 부산 아이콘스였습니다. 페루자의 구단주 '가우치'는 1998년 일본의 에이스 '나가타 히데요시'를 영입하여 마케팅과 흥행에 성공하자, 이번에는 한국의 에이스인 안정환을 영입하여 유니폼 수익을 노렸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한국은 프로축구가 큰 사랑을 받지 못하였으며, 안정환의 이탈리아 리그 중계를 하는 방송국도 없었다 보니, 안정환으로 인한 부수익을 전혀 얻지 못하는 상황이었던 것이죠.

그 당시, 한국은 박찬호, 박세리 열풍으로 야구와 골프 중계에 한창이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가우치 구단주는 돈이 되지 않는 안정환에게 인종차별 격으로 경기 출전을 막았으며, 교체 출전으로만 기회를 주었었죠. 실제로 안정환은 한 방송에서 동료들이 절대 패스해주지 않는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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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한일 월드컵

이탈리아 세리에 A에서 2년은 뛴 안정환은 한국에서 열린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일약 스타로 오르게 됩니다. 조별리그 미국전에서 자신의 월드컵 1호 골을 넣은 안정환은 16강 이탈리아전에서 골든골을 넣으며, 대한민국의 8강 진출을 이끌게 됩니다. 그 당시, 페루자 구단주 '가우치'는 무명의 안정환을 스타로 키워줬더니, 이탈리아 축구를 망쳐놓았다며, 이탈리아 방송에서 안정환에게 심한 인신공격을 퍼부었고, 그로 인해 이탈리아에서 안정환의 이미지는 추락하게 되었죠.

또한, 페루자 구단도 안정환에게 마피아들에게 살해당할 수 있으니 이탈리아로 오지 말라며, 안정환의 고급 차량은 박살 났으며, 안정환의 부인인 '이혜원'씨가 안정환의 짐을 정리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날아갈 정도였습니다.

▣ 또다시 생긴 빚

월드컵 이후, 이탈리아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 안정환은 영국 프리미어리그 '블랙번 로버스'와 계약을 진행하였으나, 임대 소속팀인 페루자는 '안정환은 아직 우리 선수'라며, 국제 축구연맹에 소송을 걸었으며, 국제 축구연맹은 페루자의 손을 들어주며, 안정환은 한순간에 36억 원의 빚이 생기고 맙니다. 원 소속팀인 '부산 아이콘스'는 이런 안정환을 일본의 매니지먼트사에 팔아버리게 되며, 안정환은 스폰서 계약으로 매년 3차례 광고 촬영을 하고, 그 광고료 및 임대료, 이적료는 기획사가 갖는 조건으로 계약을 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안정환은 일본의 시미즈 S펄즈에서 뛰게 되었는데, 대한민국 최고 축구선수로서 전성기를 보내던 안정환이 유럽리그도 아닌 일본 리그 소속으로 뛴 것이 한국인으로 너무나 아쉬움으로 남게 되네요. 참고로, 페루자의 전 구단주 '가우치'는 탈세혐의로 도망자 신세가 된 이후, 경찰에 잡혀 수감 도중 2020년 2월 2일 사망하였습니다.

▣ 안정환 또다시 유럽 진출

3년간 일본 리그에서 생활하며 광고를 찍으며 빚을 청산한 안정환에게 2005년 일본의 나고야는 그에게 30억의 연봉을 제시하였지만, 자신의 꿈인 유럽에 진출하기 위해, 프랑스의 FC 메츠와 계약을 하였으며, 그 당시 안정환의 연봉은 고작 8억 원이었습니다.

하지만, FC 메츠가 최하위로 강등되자, 계약을 해지한 뒤 6개월간 무적 신세로 지내다가 다시 K리그 수원 삼성으로 복귀하였으며, 부산과 중국 다련에서 프로생활을 마친 후, 그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축구 인생에서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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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무리

안정환은 긴 머리를 휘날리며, 잘생긴 외모와 더불어 화려한 축구 실력을 갖춘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축구선수였습니다. 축구 전성기 나이에 이탈리아 세리에 A 리그로 이적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지만, 속물이었던 가우치 구단주를 만난 것이 매우 불운이었으며, 한일 월드컵 출전 이후, 소송에 휘말리며 일본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팔려간 것도 매우 불행했죠.

하지만, 안정환은 이런 우여곡절이 많은 과거에도 불구하고, 반듯하게 자랐으며, 현재 안정환 19로 활동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의 수익금은 전액 기부하고 있습니다. 본인도 춥고 배고프고 괴로웠던 시절을 보냈다 보니, 이런 좋은 일에도 앞장서고 있는 듯합니다. 판타지 스타, 테리우스, 방송하는 아저씨의 이미지로만 알고 있었지만, 매우 힘든 과거를 보냈던 안정환 앞으로는 그의 인생에서 항상 행운만이 가득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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