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12.12 반란의 중심 비밀조직 '하나회'

카테고리 없음

by 이제시작하자 2023. 11. 30. 16:13

본문

반응형

영화 서울의 봄을 보고 나서, 12.12 사태의 중심인 비밀조직 '하나회'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아서, 하나회에 대해 조사를 하여 정리를 하였습니다. 

▣ 비밀 조직 '하나회'

 

하나회는 전두환이 만든 대한민국 육군 내 비밀 사조식으로, 전두환과 노태우가 중심이 되어, 그들의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들과 후배들을 구성원으로 하여 비밀리에 결성되었으며, 친목으로 출발한 하나회는 박정희 대통령의 후원 속에서 성장해 나아갔습니다. 동기들 중에 소령 진급이 가장 늦었던 전두환은 비밀 사조직 하나회를 만든 이후, 대령 진급이 가장 빨랐으며, 박정희 대통령의 5.16 사태를 전폭적으로 지원해 준 하나회에 감명을 받은 박정희 대통령은 하나회 인사들의 진급을 빨리 해주면서, 하나회 멤버들은 점점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1979년 12.14. 쿠테타 지휘부와 행동대장들의 기념사진

또한, 박정희 대통령은 전두환이 준장으로 별을 처음 달았을 당시에 당시 최고급 세단까지 선물해줄 정도로, 박정희 정권에서는 중요한 인물로 자리 잡았으며, 박정희 대통령 별세 이후, 10.26 사건으로 정국 혼란을 틈타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키며, 전두환이 정권을 잡는 데에는 하나회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또한, 대한민국 국군의 온갖 병폐와 지역, 비리를 넘어서 여러 병폐와 군대문화를 뿌리내리게 한 최악의 사익 단체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그 이후, 전두환이 8년, 노태우가 4년을 연임하여, 김영삼대통령이 정권을 잡기까지 군인들이 대통령을 연임하였습니다. 

▣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2005년 동아일보의 '신동아'는 육군사관학교 11기부터 36기까지 이어진 하나회 250명의 명단을 공개하였으며, 이 중에서 제대로 하나회에서 활동하는 인물은 약 200명이었습니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포함된 육군사관학교 11기는 1951년 한국전쟁 중 경상남도 창원군 진해읍에 육사가 개교되며 입학하였으며, 당시 입학생 228명 중에 경상도 출신이 70명인 것으로 보아, 경상도 출신들이 대부분의 하나회를 장악했습니다.

 

전두환은 공부 머리가 없이, 잔머리에 강했으며, 어떻게해서든지 본인이 세력을 만들어서 장악하려는 시도를 많이 하던 리더형이었습니다. 또한, 전두환은 스포츠에 흥미가 높았으며, 싸움을 엄청나게 잘해서 용맹하며, 실제로도 전두환은 타고난 파이터형으로서, 당시 대구에서 최강자로 손꼽히는 인물이었습니다. 전두환은 육사 입학시험부터 1차로 합격을 못하고 예비후보로 겨우 입학을 하였으며, 반면에 노태우는 10위로 입학을 한 수재였습니다. 또한, 전두환은 1, 2학년 때 성적이 나빠서 퇴교 위기에 몰리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반응형

 

전두환이 박정희한테 눈에 띈 일이 있었는데, 5.16 군사정변때 전두환은 육사에 나타나 생도들을 이끌고 지지 시위를 하였으며, 5.16 쿠데타를 결정적으로 성공시킨 사건으로 인해, 박정희 눈에 들었으며, 박정희는 그때에 자신의 경호를 위해, 젊은 장교들을 원했는데, 박종규 소령과 차지철 대위가 10명씩을 선발합니다. 박종규는 하나회 멤버인 전두환, 노태우 등 10명을 차출하였으며, 이들은 청와대에서 함께 근무하며 훗날 하나회의 최대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10.26 사건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은 노태우 등 하나회 멤버들과 함께 12.12사태를 성공시키며, 끝내 제 11대, 12대 대통령으로 선출이 되었으며, 제13대 대통령으로는 노태우가 선출이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회 멤버들은 전두환 정권에서 주요 보직을 배정받으며 전두환을 보좌하였으며, 대통령경호실장, 안기부장, 장관, 국회의원, 공기업 사장 등 고위직들은 모두 다 하나회 멤버들이 배정받았습니다. 

 

1988년 노태우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하나회는 분열되기 시작하였으며, 노태우는 전두환계의 인물들을 가차없이 숙청했으며, 노태우는 전두환 정권 때에 끊임없이 이인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였으나,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는 전두환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노태우는 일인자로서의 리더형 인간이 아니었으며, 임기말에 다시 한번 하나회 멤버들을 다시 주요 고위층에 임명하며 단결시키려고 했으나, 김영삼이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전두환계와 노태우계 인사들을 모두 숙청하였습니다.

▣ 김영삼 정권

김영삼은 1993년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하나회를 숙청하기로 마음먹었으며, 취임 11일만에 1차 숙청에서 7개의 별이 떨어졌으며, 2차 숙청에서 육참총창(4성), 기무사령관(3성), 특전사령관(3성), 수방사령관(3성) 등 13개의 별이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3차 숙청 때에는 군단장 및 사단장급 인사까지 모두 다 하나회 출신 장군들을 몰아냈으며, 12.12 사태는 하극상에 의한 군사 쿠데타 사건이라고 주장하며, 모든 하나회 멤버들이 숙청되며, 이에 하나회는 대한민국에서 마침애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1995년에는 전두환과 노태우가 내란죄 및 횡령, 살인죄로 구속 기소되고, 법정 최고형인 사형까지 구형받게 되며, 전두환은 사형, 노태우는 징역 22년을 선고 받았으나, 두 사람 모두 김영삼 임기 말에 특별사면되었습니다. 김영삼은 훗날 인터뷰에서 내가 하나회를 해체하지 않았다면,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회를 청산시키고, 전두환과 노태우를 구속시키고, 조선총독부를 철거시키며 민주주의를 이끈 김영삼 대통령도 아들 김현철의 비리사건과 IMF를 막지 못하며 그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반응형

댓글 영역